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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정발전소 김유찬 대표 |
1996년 이명박 폭로 양심선언, ‘금권정치’ 경종 울리고자 ‘이명박 리포트’ 출간 당시 국민·진실이 방어막이라 생각 국가지도자 범법행위, 시효 둬선 안 돼 노무현 정권, 이명박 정권의 정치적 토양 제공 좌파·우파 프레임 떠나 ‘공동 선’추구해야 국민들 깨어있어야 ‘민주주의’ 가능해
【투데이신문 한규혜 기자】1996년, 새정치국민회의당사에서 기자회견 통해 이명박 전 대통령(당시 이명박 의원)의 선거법 위반 사실 폭로하고,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위증교사 의혹을 제기하며 ‘이명박 리포트 1’를 출간했던 김유찬 한국의정발전소 대표가 지난해 12월 ‘이명박 리포트 2’를 출간했다.
1996년 당시 김유찬씨가 결행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폭로 양심선언은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은 1996년 4월 11일 총선에서 법정 선거비용 이상의 돈을 뿌린 점, 같은해 9월 이 같은 사실을 폭로한 김유찬씨를 해외로 도피시킨 혐의에 대해 1심과 2심에서 잇달아 유죄를 선고받고, 1999년 4월 9일 대법원은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국회의원 시절 선거법 위반 및 범인도피 혐의로 유죄를 확정했다. 이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게 된다.
이어 김 대표는 2007년 대선 공방과정에서 당시 이명박 후보의 위증교사 의혹을 폭로하는 두 차례 기자회견과 함께 ‘이명박 리포트’라는 책자를 내 선거법 위반,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기소돼 445일간의 옥살이를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의 질긴 악연을 이어간 김 대표는 왜 계속해서 ‘이명박, 그는 아니다’고 외쳤던 것일까.
김 대표는 1996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양심선언에 대해 “당시 개인이 희생해서 정치문화를 개선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며 “돈으로 정치를 사는 못된 관행에 경종을 울려보자는 취지로 양심선언을 실행했다”고 설명했다.
또 “1996년 당시 겪은 일을 담고있는 이명박 리포트가 후대에 그 당시 이면에는 이런 얘기가 있었구나 하는 사료로써 남는다면 충분히 쓰여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대선이 돌아오고 국민들은 다시 선택을 하게 될 텐데 거짓된 명성이나 허황된 것을 쫓지 않고 깨어있는 국민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투데이신문>은 한국의정발전소라는 정책개발연구소이자 출판소를 운영하고 있는 김 대표를 만나 이명박 리포트와 관련된 비하인드 스토리와 대한민국 정치 현실과 관련된 자세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이 전 대통령과 언제 처음 인연을 맺게 됐나.
-이명박 전 대통령이 현대건설 회장으로 있을 당시 현대에 석사장교 특채로 입사해 일을 시작했지만 그때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현대에서 일할 당시 대기업문화가 맞질 않았다. 대기업에서 20여년 만에 부장, 이사가 되는 것보다는 독립해서 다른 일을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현대에서 나와서 이런 저런 일을 하다가 1995년도 5월, 정치가 배우고 싶었다. 정치권에 계신 분들 중에 멘토로 생각하는 19분을 추려 편지를 발송했다. 편지에는 내가 이런 사람이고, 열심히 일하고 싶다는 내용을 담았다. 그 중에 한명이 이 전 대통령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이 전 대통령은 샐러리맨의 신화였고, 나 또한 그런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영포빌딩이라고 그분이 갖고 계신 빌딩에서 면접을 봤는데 ‘정치를 배우고 싶다’하자 이명박 전 대통령이 ‘같이 크자’고 말한 것이 첫 인연이 됐다.
이후 국회 안에서 의정활동보조를 했다. 국회의원 활약상을 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밖에서는 국회의원들이 우습게 보일지 몰라도 국회의원들이 갖고 있는 특권들이 많이 있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은 전국구 의원이었다. 14대 민자당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유명세와 돈, 현대건설 출신인 점을 높이 평가해 당시 전국구에서 지역을 하나 맡는 것을 제안했다. 이렇게 전국구에서 지역구로 지역이 바뀌면서 선거 국면에 들어갔다.
그런데 선거운동 하다 보니 돈으로 밀어 붙이는 전략이었다. 예를 들어 종로 30여만 가구에 다 전화해서 성분분석을 했다. 전수조사를 한다는 미명하에 홍보를 했다. 당시 죄책감보다는 일에 대한 의욕이 넘쳐 성공적으로 해냈고 유세팀장에 역임됐다.
종로 선거당시 이종찬 후보가 당시 종로의 터줏대감이었기 때문에 이기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노무현후보가 등장하면서 표를 30%정도 잠식해가면서 어부지리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됐다. 기획단에서도 정치 공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7000여 표차이로 이길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실제로 한 7280여 표 차이로 이겼다.
그렇다면 이 전 대통령과 사이가 틀어진 계기는 무엇인가
-이렇게 선거를 다 치루고 나서 나이가 36살이었는데, 보좌관 정도의 나이에 가장 낮은 비서이니 활동하기가 불편했다. 또한 1년여 동안 선거현장을 누비면서 배운 것을 토대로 판단한 결과 이명박 후보가 전형적인 금권정치를 보여주는 것에 회의감이 들었다. 그래서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사건이 불거지고 나서 저쪽 방어논리로는 5급 비서관을 요구했는데 주지 않아 앙심 품고 나가서 복수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양심선언의 진정성이나 이러한 것들을 희석시키고 희화화 시켰던 것이다.
1996년 5월, 15대 국회가 구성되면서 새롭게 진영이 갖춰지고 이 때에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정치권력을 쌓기 위해서 보좌관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의원님 13분 정도가 보좌관을 구하지 못했다. 그래서 6월 20일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사표를 제출하고, 보좌관석이 비어있는 13분의 의원실에 이력서를 제출했다.
그해 7월 22일 아침 7시 반 정도 A 의원에게서 전화가 와서 같이 일해 보자고 말씀하셨다. 이날 11시에 해당 의원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뒤 다음날 임용돼 보좌관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임용된 지 일주일 후에 의원실에서 업무를 보던 중 A 의원이 호출했다. 이명박 의원을 만났다고 하면서 말끝을 흐렸다. 이어 그로부터 일주일 뒤에 그만 나왔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이유도 모르고 2주 만에 해고됐고, 정황상 A의원이 이명박 전 대통령을 만나고 온 뒤라 심경이 복잡했다.
이런 일을 겪다보니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시각이 달라졌다. 좋을 때는 ‘샐러리맨의 신화’로 느껴지고 대단한 인물로 느꼈지만, 멀리 떨어져 보니 그렇지 못한 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사회는 보수적인 사회이기 때문에 모시며 같이 일하던 사람을 공격하면 이유는 묻지도 않고 욕한다. 그렇지만 내 개인이 희생해서 정치문화를 개선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돈으로 정치를 사는 못된 관행에 경종을 울려보자고 생각이 미쳤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우는 아주 좋은 경우였고 그래서 그 당시 양심선언을 하게 됐다.
1996년, 이명박 전 대통령과 관련된 사실의 폭로 과정은 어떠했나.
-기존 기득권이나 이명박 진영은 “김유찬 배반자다”고 우리사회에서 낙인을 찍었다. 빨갱이, 배반자라는 이미지가 씌워져 사람들 눈에 천하의 배반자로 비춰졌다. 그러나 당시 녹봉을 받아도 국가에서 받은 것이고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게 아니었다. 그러한 시각은 이명박 측에 의해서 만들어진 방어논리이며 부당하다.
양심선언을 결심했을 당시 정치 분위기라는 게 살벌해 정적을 제거하거나 양심선언한 사람 손보거나 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때문에 나를 방어해줄만한 방어벽으로 당시 이명박의 반대세력인 새정치국민회의를 선택했다. 일각에서는 새정치국민회의로부터 돈을 받고 양심선언 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말이 안 된다.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다.
1996년 9월 9일 즈음 김대중 전 대통령(당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의 일산 자택으로 찾아갔다. 서재로 안내돼서 20분 동안 새정치국민회의 이종찬 부총재, 김대중 총재와 함께 얘기를 시작했고, 금권으로 치닫는 작금의 선거는 종식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양심선언 결심을 밝히자 그 당시 김대중 총재가 김 동지 같은 젊은 사람이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바르게 세우고 앞당길 수 있다며 우리 쪽에서 최선을 다해 보호할테니 결행하라고 격려의 말씀을 했다. 그리고 다음날 중앙당에서 새정치국민회의를 열고 종로부정선거사건에 대한 전반적인 개요와 증거를 제시하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 이후 엄청난 파장이 왔다. 이미 예측하고 있었지만 제일 고민이 됐던 것은 동료들이었다. 그 당시 호형호제하던 이광철 비서관 겸 회계책임자가 잘못되면 구속된다고 했다. 양심선언 해놓고도 옛 동료들에 대한 측은지심과 우려에 좌불안석이었다. 강상현 기획부장이 와이셔츠를 5일 동안 못 갈아입었다고 얘기하는 등 옛 동료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홍콩행 비행기를 타게 됐다.
양심선언을 한다는 게 경험해보니까 심정적으로 굉장히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특히 조직의 일원으로 있다가 조직을 이탈하는 과정은 굉장히 고통스러운 과정이었고 대의명분 이런 것은 두 번째 문제였다. 내부적으로 같이 일하던 사람들과의 관계의 절연으로부터 오는 고통이 엄청났다. 아마 사람들이 불의를 보고도 섣불리 얘기를 못하는 게 그런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이 외에도 본인이 감내해야 할 불이익들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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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6년 양심선언 당시 정황을 설명하고 있는 김유찬 대표. |
이후 모습을 더 당당히 드러내기 보다는 홍콩행을 택해 도피했다는 이미지가 형성됐다.
-홍콩으로 간 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나중에 1996년 양심선언 내용을 부인하는 편지를 공개했지만 다 거짓이다. 이명박 측근들이 기자회견 내용을 부인하는 편지 초안을 가져와 이대로 적어달라고 했던 것이다. 기자회견의 진정성이 도전받기 때문에 못하겠다고 거부했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특명을 받은 보좌관들이 홍콩행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까지 끝까지 종용했다. 해외로 나가는 상황이니 알았다고 하고 써준 것이다.
홍콩에 가서도 불가피하게 이명박 전 대통령 아는 사람의 관리 하에 있었다. 홍콩, 캐나다에 가 있는데 계속 기삿거리를 줬던 한 유명일간지 기자가 내 기사를 사실 반 판단 반으로 막 실었다. 계속 듣다보니 내가 완전히 이상한 사람이 돼 있었다. 해외로 빼돌려놓고 이렇게 치사한 사람으로 만드는 구나 싶었다.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와 검찰 진술을 했다. 그 당시 사건을 맡았던 주성용 검사도 나중에 김유찬 대표가 구속된다면 상당히 잘못된 것이라는 취지의 인터뷰도 한 바 있다.
이후 이명박 전 대통령이 후보로 나선 2007년 대선 직전 '이명박 리포트'를 낸 동기는 무엇인지. 타이밍을 보면 상당히 의도적인 것 같아 보이는데.
-1996년의 사건은 내 개인으로 봤을 때도 한 인생에 회기된 사건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관계없이 원고준비는 늘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2007년 대선에 이명박 전 대통령이 유력후보로 거론됐다. 이에 개인적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당선된다면 국가최고 권력까지 쥐게 돼 나라에 재앙이 될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책을 통해 이명박 전 대통령의 과거 과오를 얘기했으며, 국민들이 편향된 시각으로만 보고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다른 면들을 낱낱이 밝혔다.
그렇게 이명박 리포트 1권을 냈다. 1996년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과 관련된 의혹에 대해 담았다. 그리고 기자회견을 열어 상당한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지혜로운 사람이었다면 실명을 거론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아무 출판사도 출판해주지 않았다. 할 수 없이 한국의정발전소라는 출판소를 만들고 스스로 출판했다. 역사에서도 바른 말을 하기위해 고초를 겪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옥중에서 국민들이 촛불집회를 하고 명박산성을 쌓는 것을 보고 많이 울었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불만이 팽배해진 상황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이명박 리포트' 내용과 기자회견이 문제돼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이자 허위사실유포, 선거법 위반이라며 패소했는데.
-1996년도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선거법 위반, 해외도피 관여 등이 모두 유죄로 판결돼 의원직 상실했다. 앞서 판결을 받은 내용을 이명박 리포트 1권에 실은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약 10년 후인 2007년 1996년 당시 재판결과를 번복하고 유죄판결을 내렸다. 같은 내용인데 왜 다른 판결이 나왔는지 사실 잘 이해되지 않는다. 2007년 위증교사 사건 때에도 증거자료를 제출했는데 새 재판부에서는 받아들이질 않았다.
이명박 리포트 2권의 핵심내용이 바로 이것이다. 이것이 우리나라 정치 검찰의 현주소라는 비판을 담았다. 법의 정신은 진실이 거짓이 될 수 없고, 거짓이 진실이 될 수 없다는 것인데 안타깝다. 억울한 마음에 이명박 리포트 2권에 2007년 재판 당시 공소장, 판결문과 그에 대한 반박문을 제시해놨다.
445일 동안 감옥생활을 한 개인적인 고생은 감내하겠지만, 권력에 의해 없는 죄를 뒤집어 썼다고 생각한다.죄를 씌우는 상황은 우리나라 전체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는 시정이 돼야한다고 생각했고 이명박 리포트 2권에도 그러한 내용을 집필했다.
'이명박 리포트' 1권으로 말미암아 감옥 생활을 하게 됐는데 힘들지 않았나.
-쉽지 않은 생활이었다. 이명박 리포트 1권때문에 감옥에서 445일 동안 지내게 됐다. 오랜 기간 수용생활을 하면 몸이 망가진다. 제대로 된 방한복도 없고, 감옥엔 여름과 겨울 두 계절밖에 없다. 우리나라 재벌들이 감옥가면 바로 마스크 쓰고 침대에 누워있는 것이 거짓말이 아니다. 편안함에 익숙했던 사람들이 모든 것을 박탈당했을 때, 가장 기본적인 온기조차 느낄 수 없을 때 결국은 거기서 건강을 잃게 된다.
445일 동안 사형수들과 함께 있었다. 그렇지만 차디찬 방에서 잠을 잘 때도 즐거운 마음으로 잠들었다. 해외로 많이 돌아다녔기 때문에 비행기 안과 감옥을 비교하면서 버텼다. 비행기 좌석은 좁고 불편한 점을 떠올리면서 비록 감옥이지만 발은 뻗치고 살 수 있으니까 ‘나는 지금 로스앤젤레스로 간다’고 마인드 컨트롤하면서 잠들었다. 아침이 되면 스스로 거짓말 했던 것이 드러나지만 그런 식으로 가장 중요한 건 마음을 정의하고 항상 생활했던 것이 건강을 잃지 않았던 비결이었다.
'이명박 리포트' 1권 출간 때는 1996년과 달리 별다른 보호세력 없었는데
-당시 일각에서 2007년 폭로 당시 이명박 후보 측에서 ‘박근혜 전 대표 측의 배후설’을 제기하기도 했는데 이는 사실무근이다. 당시 박근혜 전 대표 측의 사주를 받았다거나 어떤 모종의 거래가 있었던 것이 아니며 개인적인 소신을 갖고 대한민국 지도자로 이명박 후보가 적절하지 않다고 피력하기 위해 폭로한 것이다.
이명박 리포트1권을 낼 때 국민이 정치세력에 대한 보호막이 돼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 이명박 측에 180명의 변호인단이 구성돼 공방을 하는데 전혀 두렵지가 않았다. 당시 여유도 없었고, 변호사도 없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 보좌관 시절을 언급하며 내부고발자로써 치부를 드러내고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고통스러운 일이었지만 보여지는 것과 다른 사실들에 대해 야기함으로써 국민들의 선택에 도움이 되는 계기가 된다면 개인적인 고통은 감내하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둘 다 과신한 것으로 밝혀졌지만, 분명 이 책은 내가 직접 보고 느낀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진실을 그대로 담은 책이다. 요새 사극 정도전이 TV에서 방영된다. 사극작가들이 약간의 사료에 기초를 둬 상상력을 덧붙여 이러한 자료를 낸다. 이처럼 이 책도 후대 100년, 200년, 500년 후에 그 당시 이면에는 이런 얘기가 있었구나 하는 기록으로써 남는다면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깨어있는 국민이어야 한다. 선거 당시에 국민들을 잘 살게 해준다는 말에 그를 뽑았다. 집단적 최면 상태라고 판단됐다. 민주주의 가장 큰 적인 우중화가 돼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명박 리포트 2’에서 제일 경계하는 것도 다시는 이런 일을 반복하지 말자는 것이다. 앞으로 4년마다 계속 대선을 치르게 되는데 표면적인 명성이나 프로파간다(propaganda)에 현혹돼 지도자를 선택하지 말고 그를 면밀히 살펴보고 그가 살아온 길, 어떤 철학을 갖고 어떻게 행동하면서 삶을 살았던가를 봐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국가와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았던 사람이고, 사리사욕을 위한 삶을 살아온 사람에게 권력을 주는 것은 옳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명박 리포트' 2권을 쓴 이유는 무엇인가.
-‘지도자의 행보는 시효가 없다’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국가지도자의 과거와 현재의 행보는 끝없이 평가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오바마는 하버드대학 시절 주차비 안 내고 도망간 것까지도 검증받는다. 자칫 잊혀지기 쉬운 사건을 통해 본 이명박 전 대통령에 관해 담았고, 이 기록을 통해 사람들에게 반면교사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책을 또 다시 집필했다. ‘사람을 귀히 여겨라’, ‘국가 지도자는 보통사람보다는 정직하고 뛰어난 도덕성을 가져야한다’, ‘돈이 만능은 아니다’ 등의 의미도 담고 있다. 조선일보에서 조갑제나 이런 분들은 ‘우리가 성인군자를 뽑는 것이냐’고 하거나 심지어는 시중에서 ‘살인만 안하면 찍자’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이것은 망국의 지름길이다. 국가의 지도자는 평균보다는 높은 도덕성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도자가 된 뒤 결과가 무엇인가. 유사 이래 장관급 41명이 구속되고 서민들의 혈세가 엉뚱한 정책으로 흘러들어갔다.
우리나라 전체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는 이러한 상황이 시정이 돼야 한다. 좀 더 개선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책을 집필했다.
책을 통해 노무현 정권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는데.
-원래는 노무현 정권에 대한 비판을 다른 단행본으로 내려고했지만 책 속에 같이 넣었다. 내가 이명박에 부정적인 행보를 계속하자 혹자는 내가 노사모랑 연결돼 있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는데 그것을 부정하는 의미도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같은 지도자가 탄생할 수 있는 정치적 토양을 제공한 건 노무현 정권이라고 볼 수 있다. 좌파정권에 대한 식상함, 만성피로를 느낀 국민들이 이 전 대통령을 뽑게 한 토양을 제공했다고 본다. 이 챕터를 넣는 순간 한쪽 방어막이 없어지게 됐긴 했지만.
노무현 정부가 좌파 정권으로써 잘해내지 못했기 때문에 2007년 대선 당시 국민들이 정동영 후보를 뽑지 않았다고 본다. 이런 것을 예리하게 읽은 것이 이명박 전 대통령이었다. 이 챕터를 집어넣으면서 노사모에게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내 주장을 꺾을 생각은 없다.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현직에 있을 때는 현직의 실정에 대해 비판을 많이 했다. 그러나 인간적으로는 따뜻한 분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권위주의를 탈피하고 스스로 새로운 권력의 지평을 열었다는 좋은 평가를 많이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적인 면과 정치적인 면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이웃집 아저씨처럼 푸근한 인상을 주는 대통령 시대가 요구할 때도 있지만 때로 정치는 아주 냉혈안처럼 처신해야 될 때도 있다.
노무현 정권 때의 실정에 대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분야를 분석해봤을 때 인간적으로는 대단히 존경스러운 분이지만 정치공학 쪽으로 봤을 때는 대단히 무능력한 대통령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당시의 남북관계문제, 경제문제, 이런 부분들 전반적으로 특히 사회통합문제에서 봤을 때 사회를 갈등과 분열로 몰고 갔다고 생각한다.
보수층들을 그렇게까지 자각할 필요가 없었는데 그렇지 못했다. 예를 들어 장성들 모아놓고 대통령이 주머니에 손 집어넣고 똥별들이라고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장군들이란 게 보수층에서도 극 보수층인데 그런 사람들을 데려다놓고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대미관계 취급할 때도 노련하게 접근해야 했다. 대통령이라는 포지션이 있는데 마치 체게바라 혁명가처럼 접근하면 안 됐다.
정치는 물 흐르듯이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존재하는지 안하는지 모를 정도로 아주 자연스럽게 그러나 소리 소문 없이 자기가 추구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게 가장 상수, 고수의 정치라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노 대통령은 정열과 정의감은 뛰어난 분이지만 테크닉한 측면에서는 굉장히 부족한 사람이었다고 평가를 내릴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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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유찬 씨가 집필한 이명박 리포트 1권(하), 2권(상). |
박근혜 정권에서는 늘상 있어왔던 전 정권 심판 없는데.
-이명박 정권은 사대강 비리, 자원외교 등 심판받아야 될 사건이 많았다. 물론 단죄가 필요하고 단죄 할 때가 오지 않겠나 생각한다. 현재 친이계, 친박계가 동거정부 비슷하게 존재하고 있고, 내실을 기해야 하는 상황이라 당장은 불가능할지라도 집권안정기에 들어가게 되면 전 정권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지 않겠나 생각한다. 그리고 그날이 와야한다고 생각한다.
범죄자들은 범죄를 저지르면 시효가 있다. 하지만 국가지도자는 시효가 적용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역사적 시효라는 것은 무한하게 적용돼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여러 가지 현안들이 산적해있으니 미처 돌아볼 여력이 없을지 모르고 또 친이계도 다수 포진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은 잠잠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깨어있는 국민이라면 반드시 요구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잘못된 정권의 실정은 시효를 두지 말고 추정을 해서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 정부가 시기를 고르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역사적 단죄와 평가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 정권에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좌와 우로, 남과 북으로 갈리는 ‘기존의 프레임’에 갇혀있게 되면 어떤 정부라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여성 지도자다 보니 국민 행복지수를 높이는 등 상당히 섬세한 정책을 펼친다. 남북한 문제 등 우리 사회는 단단한 사회가 아니고 복잡한 사회다. 이런 상황을 노련하고 유연하게 탈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이것을 어떻게 소리 소문 없이 무리 없이 탈피할 수 있느냐가 지도자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남북·좌우 등의 프레임을 유지해 기득권을 유지하는 것을 배격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를 구성하는 사람들은 기득권 세력들이고, 야권도 어떻게 보면 제도 내에 있는 기득권 세력들이다. 그러다보니 국민들은 안철수 의원 같은 자연인들에 호응한다. 이 안에 국민들의 ‘좌우의 프레임이 지겹다. 60년 동안 지속된 프레임이 우리한테 무슨 이득이 왔는가. 재벌들 배불리고 분배는 왜곡됐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본다. 이런 거대한 프레임을 변경하는 데 지도자들이 머리를 모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이뤄지지 않으면 후진국으로 정체돼 나락으로 떨어지거나 전쟁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좌, 우의 프레임으로 본다. 하지만 이제 이것을 탈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향이 진보냐 보수냐. 당연히 나이가 들면 사람이 약간 보수화 된다. 이런 말이 있다. “20대 맑스주의자가 안 되는 사람은 젊음을 논할 자격이 없고 50이 되어도 아직까지 맑스주의자라면 인생을 헛살았다”는 얘기가 있다.
나이가 젊었을 때는 개혁과 기존 기득권에 대해 부정한다.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다 같은 맥락이다. 나이가 들어 소유하는 게 생기게 되면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한다. 좌와 우의 이분법을 갖고 모든 사람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우리는 끝없는 평행선을 가야한다. 결국 국가적으로는 전쟁, 개인적으로는 분열되게 된다고 본다.
나는 보수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 그러나 보수의 가치 전체를 용납하지는 않는다. MB의 실정을 비판하지만, 보수가 갖고 있는 여러 가지 좋은 점이 있다고 생각하며 진보에서 제시하는 것 중에 좋은 점도 물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누가 가장 인간적이고 만족스러운 공동의 선을 만들 수 있는가’이지. ‘진보가 옳은가, 보수가 옳은가’가 아니다. 이런 사고를 갖고 있으면 사고도 정지하고 사회도 분열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보수도 진보도 아닌 안철수 신당은 정치에 있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왜 국민들이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게 됐는가를 생각해보면 결국 국민의 시대적 요구는 보수와 진보의 논쟁의 프레임 속에 더 이상 국민을 괴롭히지 말라는 것이다. 보수와 진보의 이분법 프레임으로 자꾸 몰아가다보면 결국 국가는 분열하고 남북 전쟁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국민적 외침이다.
안철수 신당이 등장해 국민들이 정치권에 신선한 변화를 기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신당이 약한 느낌이 있다. 조직과 자금 부분에서 약하고, 야망은 있지만 조직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가 미지수이다. 조직화된 소수가 비 조직화된 다수를 이긴다.
자연적인 현상만으로 맡겨두기엔 사회가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대안적인 조직으로 등장하기 위해서는 조직화돼야 하고 변화에 대한 정확한 방향과 신념으로 똘똘 뭉쳐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명박 정권 외에 그동안의 정권들에 대해 평가해 본다면.
-시대 시대마다 역할이 있었지 않겠나 생각한다. 이승만 전 대통령 같은 경우 최선은 아니지만 최악의 지도자는 피한 것이다. 그에 반해 북한 같은 경우는 최선의 지도자를 선택 못한 것이다. 조만식 등 오랫동안 민족 운동했던 사람이 아니라 수입된 소련의 화채장부에 실려 온 사람이 권력을 장악하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은 고비 고비마다 왜 그들이 등장해야했는가 배경이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최고고 어떤 사람이 최악이다 얘기할 순 없을 것이다. 물론 호불호는 있을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도 평가가 극명히 갈리지 않는가. 우리나라 경제의 초석을 닦은 사람이라며 칭송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떤 사람은 민주주의를 압살한 독재자였다는 극단적 평가가 있다.
나는 공7·과3이라는 원칙이 상당히 지혜롭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건에 대해 공을 70%, 과는 30% 정도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중국 천안문 광장에 모택동 사진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존경받느냐 그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택동이 공이 7, 과가 3정도 있다고 말한다. 중국인들이 참 지혜롭다고 본다. 다 잘했고, 다 잘못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그 당시에 그러한 지도자가 등장할 수밖에 없었던 여러 가지 과정이 있어 그렇게 상황이 전개됐다고 본다. 물론 이명박도 마찬가지로 생각한다.
현재 운영하고 있는 한국의정발전소는 어떤 곳인가.
-불가피하게 이명박 리포트 1권 출간 당시 출판사가 없어서 할 수 없이 한국의정발전소를 출판업 등록도 하고 자료출판도 했지만 사실 한국의정발전소가 단순히 출판업만 하는 것이 아니고 민족의 생존전략을 연구하고 있다. 힘닿는 한 대한민국의 부국강병을 위해서, 또 한민족이 나아가야할 바른 방향에 대해 연구하고 고민해 여러 가지 정책대안을 제시하고 정책 대안 자료집도 만들어낼 계획이다.
각 월별로 연구테마를 정해 일본역사왜곡문제 등 다양한 현안들을 연구하고 국민들과 연구하고 호흡하고자 한다. 개인연구소이기 때문에 거창하진 않고 자문 교수단 등 호흡을 같이하는 분들도 계시다.
앞으로의 계획.
-현재 탈고가 거의 끝나가는 책 하나가 있다. 이 책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생존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우리의 미래를 고민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정책 대안도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이건희 회장이 1천억 배당금을 받고, 재산이 13조라는 뉴스가 나오는데, 국민들 중 13%는 한계계층, 중산층도 굉장히 엷어져 언제 극빈층이 될지 모르는 위태위태한 구조를 갖고 있다. 특히 이 한계계층은 하루 벌어 하루 먹는 것도 힘들다. 그들에게 무한경쟁을 강조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러한 사회적인 취약계층에게 절대로 먹을 것과 잠잘 것 등 최소한의 인간적인 존엄을 유지할 수 있는 장치를 국가가 해줘야한다는 얘기를 담았다.
이것은 사상의 문제 공산주의, 민주주의문제가 아니라 생명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제한된 의미의 공산주의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공산주의하면 대게는 알레르기를 일으킨다. 하지만 그분들은 공산주의나 민주주의가 필요한 게 아니라 생존이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최소한 국가가 잠잘 것과 먹을 것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방식은 공산주의지만 그들이 그러한 시스템을 졸업하면 생존활동을 해 세금을 내는 식으로 운영하면 될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제안한다.
또 다른 것을 얘기하자면 남북이 국립현충원, 혁명열사묘 각각에 가서 참배하고 서로를 향해 이를 갈고 있다. 우리는 60년의 냉전 프레임에 갇혀서 한 발짝도 못나오고 있는 것이다. 산자는 화해하기가 어렵다. 60년 동안 화해가 안 됐다. 앞으로 더 극단으로 갈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DMZ같은 곳에 혁명열사묘와 국립현충원을 옮겨 놓아 같이 참배하러 가며 울고 제사하고, 왜 싸웠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는 기회가 올 것이라고 본다. 죽은 자가 화해하게 되면 자연스레 산 자도 화해하게 된다. 얼마든지 남북이 하나 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또한 북한 인민군 110만 명 중에 UN과 협의해서 10만 혹은 20만 명이든 평화유지군으로 활동할 기회를 줬으면 한다. 그 사람들이 남조선 해방하는 것 외에도 더 높은 이상과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자연스레 알게 하는 것이다. 세계를 알게 되고 자부심을 느끼게 되면 세계경찰로써 마약 밀수하는 것이 나쁜 것이라는 것을 본인들도 알게 될 것이다.
이처럼 계속해서 ‘사고의 전환’을 제안하고자 한다. 서해안에다가 미사일을 증강배치 하는 게 아니라 국가지도자는 적어도 이런 고뇌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고민이 무엇인가, 또 이를 해결하기 위한 철저한 고민이 있어야 했는데 그냥 기득권을 유지하고 냉전체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을 의미가 없다. 그런 점에서 안 의원 같은 경우에도 이러한 고민들에 대해 고뇌하고 여러 가지 해결책을 제안할 수 있다면 굉장히 바람직한 일이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씀은.
-다수가 경우에 따라 어리석어진다. 현란한 정치수사에 현혹되거나 거짓 프로파간다에 속아 결국 표를 주게 된다. 표를 위임하고 권력을 위임한 그날로부터 다시 노예가 된다.
또 국민들은 너그러워서 임기 끝나고 내려온 다음에는 금방 잊어버린다.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항상 깨어있는 국민이 됐으면 좋겠다. 이 책에서도 우중화 된 국민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돈은 천문학적 액수를 썼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의 공약은 지켜졌는가 생각해 봤으면 한다. 오늘날 국정원에서 댓글 달고 하는 것도 다 연장선상이고 그가 뿌려놓은 비민주적인 정치의 씨앗이라고 본다.
국민이 국가지도자를 한번 잘못 선택한다면, 그것이 역사에 의해서 보복을 당하게 되어 있다. 지혜로운 국민이 됐으면 좋겠다고 당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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