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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통)독후감-성석제(작가)-12/1 한겨레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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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강요찬(04)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122회 작성일 06-12-01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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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날자(12/1) 한겨레신문 9면에 장승욱 동문(4회)의 자전적 수필집 <술통> 광고가 났습니다.
저자에게 요청하여 전문을 받아 올립니다. 관심 갖고 읽어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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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참고 참은 말이 엉겨서 단어가 되고 단어에서 뿌리가 나와서 문장이 되고 글이 된 것이 김치찌개 안주의 김치처럼 여실하다. 어떻게 이 많은 말을 하지 않고도 견딜 수 있었을까.


성석제, <술통>을 말하다
알고 보면, 알고 보니

알고 보면, <술통>은 ‘술’ 이야기가 아니다. 알고 보면, 술통은 ‘통’ 이야기도 아니며 술을 담는 ‘술통’, 말술의 형님 ‘통술’, 하렘을 거느린 ‘술탄’, ‘술 탄 듯 물 탄 듯한’ 이야기도 아니다. 그러니 술을 마실 줄 모르는, 술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도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알고 보면, 『술통』은 다음 페이지에 무슨 내용이 들어있는지 궁금한 나머지 손가락과 혀가 자주 만나게 만들고 결국 단숨에 읽힌다. 그런데 이 ‘알고 보면’의 ‘알’이 문제다.
일단 지은이부터 ‘알’아야겠다. 대학을 졸업하고 이른바 사회생활을 해오면서 혹 누가  장승욱을 아느냐고 물으면 나는 대답하기 전에 잠깐씩 생각을 해야 했다. 이름 ‘알’고 나이 ‘알’고 국문학이라는 전공도 '알'고 관심이 뭔지, 어디에 있는지도 대략 짐작하지만 내가 장승욱을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아는 단어라도 미심쩍어서 사전을 뒤적거릴 때가 있듯이 우리는 대학시절 문학 서클의 1년 선후배로 만났으면서 ‘우리’라고 하기도 미안할 정도로 따로 놀았다.
왜 그랬을까. 장승욱이 워낙 과묵해서? 아니다, 침묵과 다변 사이에도 얼마든지 대화가 가능하다. 장승욱이 뭔가 다른 거룩하고 아늑한 장소에 타고 놀던 금송아지를 두고 잠시 하계와 진세에서 놀아주는 듯한 인상을 주어서? 사실 누구나 그런 척하면서 사는 게 아니었던가. 언제나 콩나물 같은 신세로 - 콩나물 버스, 콩나물 교실, 콩나물밥과 콩나물국, 콩나물무침과 떨어질 수 없던 우리들 - 줄을 서고 번호가 매겨지고 앞으로 나란히 좌우로 정렬 하면서 서로의 눈이 어디로 향하는지 살피며 생존해 온 우리로서는, 그런 척하는 재주라도 있어야 좀 잘난 인간으로 취급받았다. 대우, 대접 받은 게 아니라, ‘취급’인 것은 그런 인간이 앞에도 좌우에도 워낙 많아서였다.
알고 보니 장승욱은 말을 못한 게 아니라, 말하지 않은 것이었다. 남들이 말하고 떠들고 소리치고 제발 말 좀 하라고 할 때에, 말을 하지 말라고 강요할 때에 그는 가만히 있었다. 그게 그의 취향이다. 처용처럼 노래를 하며 춤을 추었다. 아니 춤만 추었다. 노래만 불렀다. 춤 따로 노래 따로였다. 그게 그의 기질이다.
나는 그가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를 때 너무도 스스로에게 골몰해 있어서 남들이 듣든 안 보든 신경을 쓰지 않는 줄 알았다. 한마디로 도취해 있었다. 먼저 스스로에게 도취하고 노래에 도취하고 춤에 도취하고 그 순간과 공간의 떨림, 전율에 도취하고 소주 네크타르(Nektar)를 끊임없이 들이붓고…… 평범한 자아도취라면 그 경험을 남한테 발설하지 않고 못 견뎠을 것이다. 자신의 도취를 남에게 강요하지 않고는 못 배겼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전혜린처럼, 안대구처럼(안대구는 고인이 된 내 초등학교 친구다).
그러고 보니 내가 장승욱에 관해 아는 게 하나 있긴 했다. 그는 술은 대체로 소주를 마신다. 맥주집에서도 소주를 찾는다. 나는 소주집에서 맥주를 찾기 때문에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주로 소주를 마시는 사람 - 소주파라고 하자 - 들은 대체로 맥주나 막걸리 같은 약한 술을 선호하는 쪽 - 약주파라고 하자 - 보다 술이 세다. 소주파들은 약주파(술을 약게 먹는다는 의미도 있겠다)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약주파인 나는 소주파들이 간결하고 직정적이며 뒤끝이 없다고 생각한다. 약주파들은 소주를 마시고 나서는 뒤끝이 간결하다 못해 기억이 통째 사라지는 것 때문에 고민하지만. 소주파든 약주파든 ‘술통’, ‘경음(鯨飮)’과는 다른 과에 속한다. 손오공과 저팔계, 삼장법사가 서로 다르듯. 장승욱은 내 흐린 기억 속에서는 삼장법사처럼 조용했다.
나는 장승욱이 취미를 넘어 전문 분야로 들어가 버린 결과로 내놓은 우리말 사전이며 시집을 볼 때마다 조용하게 자기 좋아하는 일을 해나가고 있는 은자를 생각했다. 사전은 축적과 응시, 집중의 결정체이고 시는 언어의 사찰 - 도심이든 산중이든 간에 - 이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이 장승욱에게 잘 어울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랬는데, 그래왔는데, 그래왔던 것 같은데…….
<술통>은 문학회의 내 친구 중 하나를 연상시킬 정도로 다변증적이다. 오랜 시간 참고 참은 말이 엉겨서 단어가 되고 단어에서 뿌리가 나와서 문장이 되고 문단이 되고 글이 된 것이 김치찌개 안주의 김치처럼 여실하다. 어떻게 이 많은 말을 하지 않고도 견딜 수 있었을까. 보통 무엇인가를 참고 참으면 편벽해지기 쉽다. 때로 폭발해 버린다. 『술통』에 따르면 ‘술통’은 신문사에 들어가 아직 학생 신분으로 맞은 첫 번째 회식에서 편집국장의 멱살을 잡았던 적도 있었고 공중전화 박스의 유리를 깨고 끌려간 파출소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대통령 각하의 사진을 향해 구두짝을 날리기도 한다. 길에서 만난 여학생을 대책 없이 따라가기, 한없이 기다리기…… 한데 폭발의 장약은 그보다 훨씬 전부터 재어지고 있었다.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는 나날이 계속됐던 탓도 있지만, 술을 마시지 않은 날도 밤에 잠을 이룰 수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가슴속에 무엇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열기가 치받쳐 올라 잠자리에 가만히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럴 때면 나는 미친 듯이 학교 운동장으로 달려가곤 했다. 두 시간씩 세 시간씩 아무도 없는 심야의 운동장을 뺑뺑이 돌고 나서야 겨우 그 이상한 열기가 가라앉아 지친 몸으로 쓰러져 잠들 수가 있었다. 그때 나를 사로잡았던 그 열기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슬픔이었을까.”
마지막 문장에서 ‘이었을까’가 힘겹게 지고 있는 ‘슬픔’은 훗날 ‘술통’이 처음 장만한 핸드폰의 창에 "비극지향(悲劇志向)"이라는 글씨로 새겨진다. 20년도 훨씬 더 전인 고등학교 시절 먹물처럼 어두운 운동장을 한 바퀴 또 한 바퀴 돌면서 내 인생에 내린 선고(宣告)라고 하는 이 ‘짓’이 아니고서는 폭발을 설명할 수 없다.
그와 나는 사실 여러 군데서 만날 수 있었다. 풋내가 가시지 않은 시를 내놓고 서로에게  난도질을 해대는 문학회 합평회 자리를 말하는 게 아니다. 청송대의 술판이 아니다.
“여름방학 직전쯤이었던 것 같다. 나는 학교로 가는 버스 안에 있었다. 1교시 강의에 대려면 시간이 빠듯했다. 라디오에서는 태풍에 관한 뉴스특보가 나오고 있었다.……여기는 태종댑니다. 태풍으로 인해 높이 20~30미터의 파도가 일고 있습니다. 파도가 태종대 앞바다의 섬을 넘어올 정돕니다…………그날 오후 나는 홀로 태종대에 서 있었다. 당연히 무인지경이었고, 하늘은 엄청난 크기의 샤워기가 되어 굵은 빗줄기를 뿌려대고 있었고, 아 정말로 산더미 같은 파도가 눈앞에 있는 섬을 넘어와 내가 서 있는 벼랑을 금방이라도 무너뜨릴 것처럼 두드려대고 있었다.……가슴이 온통 바람의 통로가 된 것 같았다. 온몸이 감전된 것처럼 떨리며 뱃속 깊은 곳에서 억제할 수 없는 웃음이 끊임없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가 ‘당연히 무인지경’이라고 했던 건 실수다. 당연하지도 않고 무인지경도 아니었다. 나는 비슷한 상황에서 대천의 바닷가에 서 있었으니까. 내가 대천에 있을 때 누군가(학교를 빼먹고 왔는지는 모르되) 파도에 떠내려가기도 했으니까. 알고 보면 한국은 넓다! 평면적은 일본의 4분의 1밖에 안 되지만 산악이 70퍼센트이니, 동요 「모두 모두 자란다」(김태영 작사 / 박재훈 작곡)를 인용하자면 산산산과 들들들에 골골골의 면적을 더하고 세계적인 인구밀도, 인과 구, 인구와 인구 사이가 지리산 피아골 골짜기처럼 깊으니 능선에서 골 바닥까지 도달했다 다시 올라오는 것까지 면적으로 포함한다면 전세계의 평면적을 다 합친 것보다, 우주의 평면적을 합친 것보다 넓다. 하도 넓어서 잘 안 보였는지는 모르지만 나도 파도 앞에 있기는 있었다네. 내 친구들도 모두 있고 싶어 했다네. 보통 이런 사이를 동도(同道)라거나 386이라거나 철딱서니 없는 애들이라거나 대책 없이 젊기만 한 놈들이라고 부른다네. 
“도시의 한복판에서 갑자기 사막을 만난 것처럼 술집과 밥집과 찻집으로 채워진 거리로부터 불과 몇 십 미터를 지나왔을 뿐인데, 거기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비현실적인 풍경이 펼쳐져 있는 것이다. 세 개 또는 네 개의 철로가 뻗어 있고, 잡초들이 제멋대로 자라 있고, 자갈이 깔린 사막이 펼쳐져 있다. 분명히 높은 곳으로 올라왔는데도 무슨 깊은 분지(盆地)에 내려와 있는 것 같은 격절감이 사람들을 사로잡는다. 좀 전에 있었던 세상으로부터 한 천리쯤 떠나온 것 같다. 무언가 다른 세상에 온 듯하다. 고요하다. 그리고 한없이 쓸쓸하다. 그곳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철길이 있는 사막’이 가장 적당할 듯하다. 그곳은 사막이되 오아시스가 없는 사막이고, 철길이 깔려 있지만 그 역시 아무 곳에도 이를 수 없는 죽은 길이다. 그곳에 드나들던 시절, 우리는 우리들 자신의 모습을 그곳에서 발견했던 것이다.”
글쎄, 고요하고 쓸쓸한 광경 앞에서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 광경에서 각자 내면과 기억 속의 고요와 쓸쓸함을 반추하지 않았더라면 격절감에 사로잡힐 수 있었을까. 격절감은 세상은 물론이고 함께 그 장소에 도달한 친구 사이에도 적용된다. ‘술통’은 스스로의 내외, 친구와의 사이, 세속의 오지를 탐사하는 인간이었다.
<술통>에는 내 대학 동기인 배효팔, 변병팔 등이 등장하긴 하는데 나는 없다. 나는 그가 변병팔과 ‘내공’을 겨루는 눈싸움을 하고 있을 때, 배효팔과 어느 한쪽이 쓰러질 때까지 서로를 패고 있을 때 지리산의 임걸령에서 삐딱하게 누워 소설가 이병주가 광고모델을 하던 오가피주를 마시고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변병팔이라는 선배가 있었다.…… 나는 그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그의 내공이 나를 제압하고 있음을 느꼈으며, 그를 결코 넘어설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감에 사로잡히고는 했다. 요컨대 나는 그를 맹렬히 질투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 밤 잔뜩 취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그를 만났다. 그 역시 몸을 가누기 힘들 만큼 취해 있었다. 나는 갑작스러운 호승심(好勝心)에 사로잡혔다. 드디어 그를 이길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도전했고 그는 흔쾌히 나의 도전을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전쟁이 시작됐다. 전쟁이란 바로 눈싸움이다. 지금의 독수리다방 앞 큰길가였다.…… 또 삼십 분쯤이 흘렀다. 나는 내 한계에 이르렀다고 생각했다. 눈을 깜박거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나는 그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그 눈에서는 아무것도 읽을 수가 없었다. 이기고자 하는 의지도, 한 시간이 넘게 눈을 뜨고 있으므로 당연히 느껴야 할 고통도,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도 거기에는 없었다.…… 그런 상태로 삼십 분쯤을 더 버틴 뒤 나는 눈을 감으며 스스로 패배를 인정했다. 싸움을 건 것도, 싸움을 끝낸 것도 나였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내 앞에 서 있다가 역시 아무 말 없이 멀어져 갔다.…… 견딜 수 없는 자기혐오와 모멸감에 빠진 나는 스스로를 응징하기 위해 그길로 철길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철로를 베고 잠들었다.”
이 또한 취하지 않았으면 나올 수 없는 ‘짓’들이다. 잘 하는 짓거리들이다. 그 비싼 내공 가지고 기껏 눈싸움이나 하고 서 있는 청춘들이라니. 그런데 이런 치기와 통속성에 빠진 그를 구원하는 것은 우연치 않은 섭리다. 더 노골적인 치기이며 통속성, 내공이다.
“그 뒤로도 나는 비슷한 절망감에 사로잡혀 철길을 베고 잠들곤 했다.……그러나 몇 년 전 혼자 술병을 차고 갔다가 칼을 들고 설치는 십대 노숙자들에게 걸려 지폐 몇 장을 뺏긴 이후로는 다시 그곳에 가지 않는다. 사랑의 종말이란 대개 이처럼 우스꽝스러운 풍경이 되기 십상인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걸 깨달음이라고 부르고 어떤 사람들은 그 십대 노숙자를 ‘천사’라고 부른다. ‘세례 요한’이면 어떤가. 몇이나 되니 ‘세례 요한들’ 또는 ‘세례 요한팀’이라 해도 되겠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술통’은 마리아가 아니고 예수도 아니어서 저자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 말의 저자, 술집 거리라는 저자, 술집 안이라는 저자, 술집 안 술꾼 내면의 들끓는 말이라는 저자. 저자가 가지고 있는 지저분하고 어둡고 낮고 지린내 나며 평등하다는 성질, 짓거리, 짓거리들, 침과 가래와 먼지와 때와 땀과 광기와 절망과 장점과 단점과 일과 놀이며 혈액형과 일가권속 같은 기억· 추억· 회억 · 회한· 후회· 안타까움이 그게 인간의 바탕이고 고상함의 거름이다.
이 책은 소설이 아니다. 거의 소설에 이른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이 ‘거의 틀림없음’이 이 책을 소설이 아니게 만든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쓰는지, 썼는지 알고 있다. 기자 생활을 했다는 경력으로 짐작할 수 있지만 그가 내놓는 숫자, 한자, 연도는 ‘거의 틀림이 없다.’ 소설은 아예 틀리거나 틀렸다 맞았다 하는 시비를 초월해 버린, 어떻게든 거의 틀림이 없는 경우에 해당되지 않도록 애를 쓴 사람들에 관한 기록, 개연성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소설이 아니거나 못 되어서 잘못되었거나 부족하다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소설이 담지 못하는 개별적 당대성, 삶의 진짜 밑천인 ‘짓거리’가 들어 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도취가 있으니까. 그래서 도취가 도취를 부르고 하는 짓거리가 깨달음을, 깨달음은 깨달은 자를, 측은함이 정겨움을 부르며 밤이 별을 불러 이런 감동적인 만화경이 벌어지고야 만다.
“우리 옆 탁자에서 판을 벌이고 있던 친구들은 오늘 산을 내려가기 위해 이른 저녁을 먹고 있었던 것인데, 우리가 꺼내 놓은 됫병짜리 소주와 우리가 준비하고 있는 빈약한 안주를 보고 측은지심이 발동해 자기들이 준비해 온 음식들 가운데 남은 것들을 우리 탁자로 날라다 주었던 것이다. 옆 탁자의 마음 좋은 친구들이 손을 흔들며 떠나간 다음, 우리 탁자로 다가와 술을 한잔씩 나눈 산꾼들은 적어도 여섯 팀, 연인원 스무 명이 넘는다. 어떤 사람은 치즈를, 어떤 사람은 김밥을, 어떤 사람은 삼겹살을, 어떤 사람은 북어국을 들고 오고, 어떤 사람은 술병을, 어떤 사람은 젓가락만 들고 와 기분 좋게 한잔씩 마셨다. 그중에는 치과의사도, 어느 시의 축구협회 간부도, 사진작가도, 학생도 있었다. 김치와 햄이 함께 끓던 우리 코펠 속으로 치즈와 김밥과 삼겹살과 북어국, 기억도 나지 않는 여러 가지 먹을거리들이 들어와 섞였다가 사람들의 입 속으로 사라져 갔고, 우리는 그 제멋대로인, 정의할 수 없는, 통제할 수도 없는 그러나 한없이 정겨운 음식에 '세석잡탕'이라는 이름을 지어 붙였다.”  알고 나면, <술통>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다. 거기에 술이 비로 내리고 통으로 굴러다니고 잡탕 냄비가 날고 누군가 덮어씌운 안주국물이 우리 모두의 머리끝에서 뚝, 뚝 듣는다.  알고 나면, <술통>은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는 청춘과 광기의 ‘짓거리’들이 때로 한 인간을 무상(無上)의 존재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찾을모는새로에 만강(滿腔)의 유감으로 깨닫게 한다.
알고 보니 장승욱은 그지없이 순정한 사내다. 술통이되 진심과 도취로 스스로와 세상을 들어 올려 바닥을 들여다보려는 사람이다. 그걸 모르고 살아왔다는 것이 누구에게도 아니게 땅불쑥하게 억울하고 아는 사람만 알고 마는 것이 안타까워 이렇게 써보노라.

성석제(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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