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주요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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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준영(00)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1,225회 작성일 20-06-01 09:45본문
2020년 6월 주요 기념일
1일(월) 의병의 날
5일(금) 환경의 날 망종
6일(토) 제65회 현충일
9일(화) 구강 보건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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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민주항쟁은 대통령 직선제를 비롯한 헌법과 정권의 개혁안을 발표하게 만든 사건으로 이후 한국 사회에서 민주화와 자유화의 물결이 본격적으로 대두되었으며, 이 사건을 계기로 제정된 대한민국 헌법 9차 개정안이 지금까지도 1987년 체제라고 표현될 정도로 한국 정치, 법률 운영의 기초가 되고 있다.
또한 평화적인 시위로 정권을 쫓아 냈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도 매우 높이 평가 받는 시민 항쟁이기도 하다. 시민 항쟁이 일어나면 대개 공권력의 폭력 남용에 의한 내란, 쿠데타, 폭동 등의 유혈 사태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지만, 6월 항쟁은 경찰과 시위대가 충돌할지언정, 전반적으로 치안은 양호했다. 당시 취재를 나선 외신 기자들도 이 점에 대해 칭찬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세계 민주주의 역사의 '민주주의의 확산'이라는 측면에서 6월 항쟁은 4.19 혁명, 5.18 민주화운동과 함께 시민들의 힘(People's Power)으로 민주화를 쟁취한 이른바 '3번째 민주화 열기'의 대표적인 예로 거론된다.
출처:지식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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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 (1868(고종 5)∼1943.10.25)
독립운동가로 일명 범도이며, 평안북도 양덕 출신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07년 전국적인 의병봉기에 자극을 받고 있던 중, 이해 9월 일제가 민중의 무장투쟁을 약화시키기 위해 「총포급화약류단속법」을 공포, 포수들의 총을 회수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에 크게 분노하여, 11월 차도선 · 태양욱과 산포대를 조직하여 의병을 일으킨 뒤, 북청의 후치령을 중심으로 갑산 · 삼수 · 혜산 · 풍산 등지에서 유격전으로 일본 수비대를 격파하였다.
1910년 소수의 부하를 이끌고 간도로 건너가 차도선·조맹선 등과 포수단을 조직하였다. 이후 교포들에게 광복사상을 고취하며 국내와 연락, 애국지사 소집과 독립군 양성에 진력하였다. 1919년 3·1운동 후 동만주에 거주하는 동포들이 간도대한국민회를 결성하자, 그 밑의 대한독립군 총사령관에 취임하였다.
같은 해 8월, 200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두만강을 건너 혜산진·갑산 등지의 일본군을 습격, 큰 전과를 거두었다. 이에 자신감을 갖고 정예부대를 인솔, 다시 압록강을 건너 강계 만포진을 습격한 뒤 자성에서 3일 동안 일본군과 교전하여 70여 명을 사살하는 대전과를 거두었다. 이후 최진동이 지휘하는 도독부와 통합, 500여 명의 대부대로 국내 진입작전을 감행하였다.
1920년 6월 최진동과 협력하여 종성 삼둔자 부근에서 국경수비대와 격전을 벌여 120명을 사살하는 대전과를 올렸으며, 두만강 대안의 봉오동에서 일본군 대부대를 전멸시키는 큰 성과를 올리니, 이것이 유명한 봉오동전투이다. 또한 같은 해 10월 청산리전투에서도 제1연대장으로 참가, 제2연대장 김좌진, 제3연대장 최진동 등과 함께 일본군을 크게 격파하였다.
봉오동과 청산리에서 치욕적인 패배를 거듭한 일본군이 계속해서 추격해 오자 독립군조직을 총망라, 대한독립군단 을 조직, 부총재에 선임되었다. 그 뒤 간도지방의 김좌진·최진동부대와 함께 노령으로 이동, 흑룡강 자유시를 새로운 근거지로 삼고 러시아군과 교섭하여 협조를 얻었다. 그러나 러시아 공산당의 배반으로 무장해제 된 뒤 많은 단원이 사살되거나 포로가 되는 등 이른바 자유시참변을 겪게 된다.
이 사변 이후 1922년 고려공산당과 한족공산당이 통합하여 조직한 고려중앙정청의 고등군인징모위원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독립운동의 지도자로서 후진 양성에만 심혈을 기울이다 1943년 시베리아에서 죽었다.
*출처:지식in